2025. 3. 31. 20:30ㆍ으쌰으쌰 농사이야기 with 귀농귀촌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정읍의 시골 마을에 낯선 리트리버 한 마리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이는 낯선 이들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눈빛을 흘리며 보호소에 입소했고,
결국 '질병을 가진 대형견'이라는 이유로 안락사 대기 명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구조 당시 공고 사진 속에서 아이는 낯선 카메라를 향해 어색한 표정으로 조용한 호기심을 내비쳤습니다.
무겁고 조심스러운 표정 속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무렵, 해남에서 귀촌 생활을 이어가던 저희 가족은 동물단체의 라이브 방송을 통해 남순이의 사연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검은 리트리버 '남철이'의 입양을 결정한 상태였지만, 마음이 자꾸만 남순이에게 향했습니다.
"이 아이도 함께 데려올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저희는 두 리트리버 모두를 품기로 결심했습니다.
남순이는 심장사상충 3기라는 진단을 받고 있었고, 치료를 위해선 체중 감량이 시급했습니다.
먹는 것을 유독 좋아하던 아이였기에 쉽지는 않았지만, 주 1회의 치팅데이를 지켜가며 조심스럽게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33kg이던 몸무게는 27kg까지 줄었고, 마침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9개월 동안의 긴 치료 끝에, 남순이는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처음 저희 집 마당을 밟았던 날, 남순이는 억눌렸던 자유를 마음껏 표현했습니다. 쓰레기봉투를 터뜨리고, 이불솜을 마당에 뿌리며 종일 신나게 뛰어다녔습니다. 사고도 많았지만, 그 모습마저도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순이는 점차 평온함을 되찾았고,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한 가족처럼 자연스럽게 저희 삶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지금 남순이는 대한민국 남도의 끝, 해남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17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살며, 직접 만든 반려동물용품을 제작하고
소소한 농사를 통해 따뜻한 귀촌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이 삶 속에서,
우리는 생명을 맞이하고 돌보며, 삶의 의미를 조금씩 더 깊이 배워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유기동물 입양을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권해보고 싶습니다.
꼭 여러 마리일 필요는 없습니다. 단 한 마리라도 따뜻한 품을 내어준다면,
그것은 분명 누군가에게 전부가 될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종종 이야기합니다. 아픈 개는 입양되기 어렵고, 대형견은 감당이 힘들다고요. 하지만 남순이는 말합니다.
"저는 가족이 되었어요."
어쩌다 길을 잃고, 어쩌다 버려졌을지라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생명은 없습니다.
해남에서 시작된 작지만 따뜻한 선택이 남순이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또 다른 남순이들에게 따스한 품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 유튜브에서 남순이 이야기 보기: https://youtu.be/uraLutj_D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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