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V 살어리랏다 촬영 후기 – 해남에서 다시 시작된 아버지와의 봄

2025. 5. 23. 20:30으쌰으쌰 농사이야기 with 귀농귀촌

봄이 오기 시작하던 겨울의 끝자락,
이곳 해남에 KTV 다큐멘터리 〈살어리랏다〉 촬영팀이 다녀갔습니다.

처음엔 낯설고 조심스러웠어요.
카메라 앞에서 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괜히 부끄럽고 쑥스럽게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말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왜 이곳에 내려왔는지,
어떻게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무엇이 지금의 저를 지탱하고 있는지.

말하면서 저 자신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돌아보니, 촬영이란 건 그냥 ‘기록’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을 마주하는 거울 같은 일이더라고요.

<이미지1>

 

촬영팀이 오기 전날,
굽이굽이 바닷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도시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돌아올 때 이 길을 따라 아버지의 정원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시작해보자.”
겨울이었지만,
이 길 위에서는 봄이 오는 소리를 가장 먼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2>

 

촬영 당일,
카메라는 집 위로 천천히 날아올라 이곳의 전경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화면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런 말이 튀어나왔어요.
"이거… 살어리랏다가 아니라, 버텨리랏다 아니야?" 😂

겨울의 집은 참 정직해요.
나뭇잎도, 꽃도, 초록도 없으니
그곳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를 만큼 조용하거든요.

하지만 이 땅은,
아버지가 손수 가꾸고 물을 주고, 돌 하나하나를 정리해주던 정원이었고,
지금은 제가 다시 살아내는 공간이기도 해요.

이렇게 삭막한 겨울 풍경 안에도
조금씩 봄이 자라나고 있음을 잊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촬영을 이어갔답니다 ㅎㅎ
정신승리! 고고!! 😂

 

아침이면 제일 먼저 마당으로 나와 꼬리를 흔드는 댕댕이들.
현관 앞 풍경은 매일 비슷하면서도,
하루도 같지 않은 온도로 기억됩니다.

지금 이 집에는
열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두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저희 집 아이들인데요,
“사람보다 낫다”는 말을 이 아이들과 함께 살며 이해하게 됐어요.ㅎㅎ

 

그 중 두 아이의 사연을 조금 소개해볼게요.

 

이 친구는 '남철이'.
묵직한 몸과 다르게, 눈빛은 항상 어딘가 짠한 친구입니다. ㅎㅎ
제가 무너져 내리려 할 때면
아무 말 없이 옆에 와서 등을 붙여주는 아이예요.
말은 못 해도, 같이 버텨주고 있다는 걸 저는 분명히 느낍니다.

 

요 녀석은 '아이'입니다.
불법 번식장에서 쓸모없는 강아지라는 딱지가 붙은 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던 상황에서 구조된 아이예요.

하지만 제 눈엔,
세상에 둘도 없는 보석 같은 강아지 딸입니다.
파란 눈으로 똑바로 카메라를 바라보던 그날,
마치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이 집에는 따뜻한 가족이 살고 있어요.” 😊

 

해남 바닷가의 작은 집.
이곳에서의 하루는 늘 빠듯하게 흘러갑니다.
작물을 돌보고,
열일곱 마리 강아지와 두 마리 고양이의 하루를 챙기고 나면
저녁엔 작업실에 불이 켜집니다.

저는 반려동물의 옷과 이름표, 산책용품 등
아이들을 위한 제품들을 손으로 만들고 있어요.

누군가에겐 사소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옷을 입고, 그 이름표를 단 강아지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하나하나 정성을 안 들일 수가 없답니다.

도시를 떠나,
고요한 바닷가 마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지금.

손으로 만드는 일은 느리지만,
공장에서 나오는 것과는 또 다른 따뜻함과 가치가 있다는 걸
조금씩 더 확신하게 됩니다.

 

 

2024년은 땅을 정비하며 계획을 정리하는 해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2025년.
드디어 아버지의 정원을 다시 꾸려나가는 ‘실행’의 해가 시작됐습니다.
무경운, 유기농으로 천천히 시작되는 작은 정원의 밭은 제가 꿈꾸는 길입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몸도 마음도 종종 흔들릴 때가 있죠.
그럴 때마다 같은 길을 먼저 걸어간 귀농 선배님들께
작은 도움과 큰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농사 초보, 농촌 초보에게 먼저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선배들의 한마디는 그 자체로 큰 격려가 됩니다.
용기가 실행으로 이어지고,
삶은 그렇게 또 한 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마당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시간은 참 소중합니다.

아버지가 남기신 정원에서
우리는 지금,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봄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더디지만 분명히, 이 정원은 더 따뜻해지고 있어요.

KTV 다큐멘터리 〈살어리랏다〉를 통해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도시에서 내려와
강아지들과 함께 밭을 일구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이 삶이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용기가 되길 바라며,
우리 가족은 앞으로도 이 땅을 정성껏 가꾸어나갈 예정입니다.

 

 

📍 귀촌을 고민하고 계신다면
해남군 귀농귀촌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보세요.
상담부터 교육, 정착 지원까지
따뜻하게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기관이에요.
저희 가족도 많은 도움을 받았답니다 😊

 

📺 방송 다시보기 링크
👉 KTV 살어리랏다 - 334회 돌아온 아빠의 정원, 기쁨 씨의 행복한 해남살이